돌과바당/이야기마당

낚시의 고수

돌과바당 2007. 4. 9. 16:33

낚시의 고수 - fish119에서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1학년까지 형을 따라서 낚시를 많이 다녔다.

형은 바늘이 두개인 중급자용 바늘을 사용했고

나는 멍텅구리라는 여러 개의 바늘을 달아 작은 고기를 유혹하는 낚시 바늘을 썼다.

자주 가는 낚시터에 할아버지 한 분도 늘 오시곤 했다.

날카롭지만 깨끗한 외모 그리고 잘 기르신 수염이 아주 잘 어울리는 단아한 분이다.


낚시를 하며 여러번을 뵈었지만 그 분은 한번도 우리를 바라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으셨다.

나는 초보용 멍텅구리 바늘로 작은 고기를 많이 잡는 매력에 푹 젖어 있었고 형은 바늘이 두개 달린 중상급자용 바늘을 사용하며 조용하게 고수를 꿈꾸던 시절이다.

할아버지는 큰바늘이 하나만 달랑 달린 최고수용 바늘로 낚시를 했는데 언제나 큰고기 한 마리와 일대일의 깨끗한 정면승부를 하고 있었다.


여러번을 뵐 때까지 그분은 늘 빈손이셨고 단 한번도 우리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초등생인 내게 비친 할아버지의 모습은 잘 이해가 안 되었고 그건 시간이 길어질수록 궁금증은 더욱 켜져만 갔다.

한번은 내가 가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그 분은 웃으며 나를 바라다보곤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늘 빈손으로 가셔서 내가 잡은 작은 고기들을 갖다 드린 적도 있는데

할아버지는 "그 고기들은 너의 몫이란다...."라는 말을 하시고 받지 않으셨다.

낚시터에 갈 때마다 나는 약간의 군것질거리를 가지고 가서 그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할아버지는 좋은 미끼, 명당의 선택 방법 등을 가르쳐 주셨고 낚시대를 잡아채는 타이밍, 붕어와 잉어의 심리상태 등을 말씀해 주셨다.


한번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연못에 사는 고기의 씨를 모두 말리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형은 그물을 사용하면 된다고 했고 나는 물을 다 퍼내면 된다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시며

"연못의 고기를 멸종시키려면 낚시만이 유일한 방법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물을 다 퍼내도 그물을 사용해도 절대로 연못의 고기를 모두 다 없앨 수는 없다고 한다.


"할아버지 낚시로 어떻게 연못의 고기를 모두 멸종시킬 수 있지요...?"

"살아 있는 것들을 전멸시키려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미끼가 필요하단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미끼요 .....?"

"너희들도 세상을 살면서 온갖 유혹적인 <미끼>들을 절대로 물지 않아야 한단다..."

"낚시는 나와 고기의 싸움이 아닌 나와 자연과의 싸움이다......."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그 당시에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말들이다.


할아버지는 낚시말고도 엄청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 주곤 했다.

형이 질문을 하면 어떤 어려운 주제들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답변을 내려 주신다.

낙엽들이 낚시터에 조금씩 쌓이던 어느 가을날, 할아버지가 약 30센티 정도의 잉어를 낚았다.

30센티라면 낚시대가 활처럼 휘어지고 뜰체라는 것으로 건져 올려야 한다.

우린 도와 드리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내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잉어를 바라보시다가 물속으로 돌려보냈다.

잉어는 영어의 몸에서 다시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내가 "할아버지 저 주시지 그러셨어요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아가야 이것은 나와 네 몫이 아니란다 이놈은 자연의 몫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럼 할아버지 몫은 뭐예요 ...?"라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내 몫은 지금까지 내가 낚은 것 중 가장 큰 고기가 내 몫이지..."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인생에서는 각자의 <몫>이 있고

그리고 삶에서 그 <몫> 이상의 것을 바라면 불행해 진다는 말을 해 주셨다.

"인생은 70퍼센트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소인의 배움은 귀로 들어와서 입으로 나간다..."

"지나친 천국을 동경하면 현재는 늘 지옥 같은 것이다 ..."라는 말들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할아버지는 형보다 나를 엄청 좋아헸는데 나중에는 낚시보다 그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일요일이 더욱 기다려지곤 했다.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아래위로 자주 쓰다듬어 주셨고 그럴 때마다 난 한없이 뿌듯해지는 마음이 일었다.


어느덧 겨울이 오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추운 겨울동안 나와 형은 틈 날 때마다 그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형은 할아버지를 늘 철학자라고 표현해서 철학이라 이름 붙여진 낮선 책들을 무자비하게 읽기 시작했다.

철학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와 더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봄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다시 그 낚시터를 찾아갔다.

할아버지에게 염세주의와 실존주의 등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상한 사람들과 쓰레기만 군데군데 있을 뿐 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형도 군대에 가서 혼자 할아버지를 찾아서 매주 갔지만 할아버지는 안 계셨다.

낚시대를 담그고 기다려도 안 오시고 할아버지처럼 잡은 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것을 반복해도 오지 않으셨다. 평일에 학교를 빼 먹고 간 적도 있는데 그 분은 계시지 않았다.

다음날 선생님에게 많이 혼났는데 성생님이 뭐 했나고 물어서 낚시터에 갔다가 왔다고 말했다가 더욱 더 많이 맞았다. 거짓말을 해야 유리함을 그 학교에서 배웠다.


여름이 다 끝나갈 무렵에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할아버지는 겨울동안 아프셨다고 한다.

그리고 "귀여운 아기가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었구나."하고 말씀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우리는 또 다시 매주 만났고 할아버지와 오붓하게 담소와 낚시를 하면서 나의 바늘도 두개의 미끼를 매단 중급자의 바늘로 바뀌어 있었다.


한번은 할아버지의 찌가 미세하게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직감적으로 대어라는 어떤 느낌이 왔는데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느니 찌가 위로 약 2미리 정도 슬며시 올라왔다.

큰 고기들은 미끼를 물면 감각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순간에 낚시대를 잡아채면 십중팔구 고기를 놓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고기가 물 속에서 약간의 이동을 시작하려 할 때 낚시대를 잡아채면 입에 정확하게 낚시 바늘이 꽂히는 것이다.


그 짧고 긴 기다림 속에서 할아버지는 정확하게 찌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여 잡아챘다.

활처럼 휘어지는 낚시대, 끊어질듯 팽창하는 줄의 요동, 고기는 있는 힘을 다해 필사의 탈출을 꾀했다.


할아버지는 고기가 수면아래에서 힘을 쓰면 낚시대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고기가 지쳐 움직임이 적으면 다시 당기고 하는 반복적인 작업을 능숙하게 진행했다.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 줄 엄두도 못내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아가야 뜰채를 잡고 도와줄래..."라고 말씀하셨다.


잠시간의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 인간이 있음인지 고기가 지치는 시간이 훨씬 빨랐다.

축 늘어져서 딸려오는 낚시대에서 커다란 잉어는 마지막의 용 틀임을 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한 일은 그져 뜰채를 잡고 고기가 수면으로 끌려올 때 담은 것 뿐이다.

약 50센티 가량 되는 잉어였는데 거무튀튀한 등과 빛나는 지느러미를 가진 웅장하고 멋진 모습이다. 뜰채에 담겨 지상으로 나온 잉어지만 눈빛은 살아있는 것처럼 위풍당당하다.


할아버지는 매우 만족하시며 "아가야 인생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는 거란다 ...." 그리고 만약, 도움을 받았다면 목숨을 걸고 신의를 지켜야 하는 거란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그분의 말씀들은 진리란 것을 느끼곤 한다.

인간사의 신용도 그러해서 유리처럼 한번 금이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고기를 놓아주지 않았다.

늘 내 생각과 반대로 가시는 분이다.

그 고기와 함깨 책으로 온통 도배를 한 듯한 할아버지 집에 초대를 받았다.

가장 큰 고기를 낚으면 늘 요리를 해 드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물고기 요리를 한 것이 약 3년 전이라고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식탁에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거센 파도만이 강한 어부를 만들 수 있다...."

"이 고기는 神이 아니다 더 살다보면 神을 꿈 꿀테고 자연의 해악이 되는 거지 ........."

"지나침은 모자람 보다 못한 것이다 .........."

중1의 내겐 굉장히 어색하고 어렵게 들리는 말이었다.


골프와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힘겨운 상황을 겪을 때마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해준 조언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강한 어부도 되지 못했고 삶에 무수하게 존재하던 유혹적인 미끼들을 그다지 잘 피해간 인생을 살지도 못했다.

여자의 눈물이라는 <미끼>를 수없이 물어 낙시 바늘에 입천장이 다 해진 삶을 산 것이 그 중거이다.

고독은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있음을 깨닫던 날, 나는 비로소 여자는 물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