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코스 : 세종호수공원-대덕사입구-원수산-전월산-숭모각-세종호수공원
- 이동거리 : 12.2km
- 소요시간 : 3시간 52분
○ 세종호수공원
○ 원수산 자락에 있는 인공폭포
○ 원수산 대덕사 표지석
○ 원수산 정상 가는 길에 있는 습지생태원
○ 원수산유래비
- 원수산은 원래 산의 모습이 뾰족한 붓과 같다하여 문필봉이라 불렀는데, 연기대첩 이후 원수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 원수산 정상에서 본 세종시 전경 - 시야가 좋지않아 잘 보이지 않는다.
○ 원수산 정상에서 본 전월산
○ 원수산과 전월산을 잇는 생태통로
○ 전월산 오르다가 본 원수산 - 산 아래 도로 중간에서 오른쪽 부분 볼록하게 보이는 부분이 생태통로이다.
○ 상여바위(想麗岩)
- 옛날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임난수(林蘭秀 )라는 장군이 전월산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다.
- 그는 성품이 어질고 학식과 덕망이 높아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자 이곳에서 움막을 짓고 산초와 풀뿌리로 연명하며 나라를 잃은 슬픔에 시름시름 살았다
- 이곳 북쪽이 잘 보이는 바위에 않아 하염없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다 이윽고 세월이 흘러 그는 노환으로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그후 사람들은 그가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하여 그 바위를 '상려암' 또는 '상여바위'라 불렀다.
○ 상여바위에서 정부청사 방향으로 본 모습이나 시야가 않좋다. 외쪽에 금강이 희미하게 보인다.
○ 상여바위에서 본 금강
○ 용샘과 버드나무
- 금강을 앞으로 우뚝솟은 전월산은 상봉에 용천이라는 샘이 산속으로 뚫여 있고 금강까지 물이 흘러 이무기가 금강에서 자라 용천까지 올라와 백년을 기도하면 옥황상제의 부를을 받아 승천하게 된다고 하였다.
- 고려 초엽 이무기가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천궁의 파수병이 되기 위해 물줄기를 타고 승천하던 중 하늘의 중간쯤에서 물줄기가 멈추더니 다시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 그리고는 하늘에서 진노한 소리가 들렸다. "건너 마을 반곡의 산모가 너를 쳐다보고 있지 않느냐, 승천할 때는 티없이 맑아야 되고 절대 산모가 보아서는 아니된다 명심하라 하였거늘" 이무기는 산모 때문에 승천을 못하고 용천에 떨어진 후 버드나무가 되었다.
- 그후 버드나무는 원망을 하듯 반곡마을을 향해 자랐고 이무기의 심술 때문에 반곡마을 아낙네들이 바람이 났다고 한다.
○ 며느리 바위
- 옛날에 마음이 고약하기로 소문난 부자가 있었는데 심성이 곱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를 보게 되었다.
- 어느 날 백발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했는데, 시아버지가 스님의 바랑에 퇴비를 한 삽 넣어주는 광경을 며느리가 보게 되었다.
- 며느리는 마을을 벗어나는 스님께 쫒아가 시주를 하고 시아버지의 용서를 빌었다.
- 스님은 며느리에게 '내일모래 뒷산인 전월산에 오르되 뒤를 돌아보지 말고 성상까지 올라가시요' 하고 일러 주었다.
- 며느리는 노승이 알려준 그날 산을 올랐고 오르는 중 천둥번개가 쳐서 마을이 몹시 궁금했지만 참고 전월산 정상까지 다달았으나 시아버지의 비명에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마을은 바다처럼 물속에 잠겨 있었다. 바로 그때 뒤를 돌아본 며느리가 기이하게 바위로 변했다 하여 그 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불렀으며 바위 밑에서 지성으로 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였다.
○ 연기 세종리 은행나무
-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 탐라 정벌에 공을 세우고 공조전서를 지낸 임난수(1342~1407) 장군이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심은 것이다.
- 공은 태조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공주 금강변 삼기촌(현 세종리)에 은거하였는데, 이성계가 여러번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 이 때 심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600 여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변이 생길때마다 울었다고 하는데, 1910년 한일합방과 6.25전쟁 때 울었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배려고 했으나 나무에서 소리가 나 베지 못하였다고 한다.
○ 숭모각
- 고려 말의 충신 임난수(林蘭秀 , 1342~1407) 장군을 제행하는 사당이다.
- 임난수는 부안임씨로 1342년에 출생하여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쳐, 고려 말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 조선이 건국되자 두 임금을 모시지 않겠다고 하여 관직을 버리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 금강변으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 이 때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는 6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세종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 그가 고려 왕조를 향하여 절을 했던 전월산 부왕봉과 상려암도 유적으로 남아 있다.
- 사당에는 임난수 장군의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 당시의 그림은 임난수 장군이 탐라를 정벌하던 때에 왜적에게 잘린 손을 화살집에 넣어 메고 싸우던 모습이었다고 한다.
- 세종은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임씨가묘'라 쓴 현판과 토지를 하사하였다.
-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임씨 가묘였던 기호섯를 부수자 1923년 이곳에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1957년 서울 시공관에서 전국 부안 임씨 총회를 거쳐 숭모각 복원을 추진한 끝에 1964년 복원을 마쳤다.
- 내부에는 부안임씨 시조 임팔급을 비롯한 1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세종호수공원 주변 도로 - 어느덧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 세종호수공원
○ 호수공원 모래밭
○ 세종호수공원 - 멀리 왼쪽에 오산 뒤로 원수산과 오른쪽에 전월산이 보인다.
'출조&산행&여가 > 산행(国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주산(충남 세종시) (0) | 2016.10.03 |
---|---|
북한산(서울도봉, 경기고양) 북한산성입구코스 (0) | 2016.10.02 |
가야산(충남 예산군) (0) | 2016.09.18 |
대둔산(전북 완주군) 금강구름다리코스 (0) | 2016.09.11 |
서대산(충남 금산군) (0) | 2016.09.10 |